라이프로그


2016/10/03 18:13

Oasis, 재결성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야기

 *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도 게시함. 

 붙어 있을 때도 절친하기보다 싸우는 일이 많았던 두 형제, 노엘 갤러거(이하 노엘)와 리암 갤러거(이하 리암)가 갈라 선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많은 사람은 생떼를 부리다 입에 사탕을 물리면 금세 조용해지는 아이처럼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맞닿을 것이라 여겼지만 두 사람의 골은 매우 깊었다. 아직까지도 노엘과 리암의 거리는 좁히지 않았다. 그동안 Definitely Maybe 20주년 기념 음반도 발매되고, Oasis 다큐멘터리도 제작되었지만 재결합 이야기는 그렇게 가능성 있게 다뤄지고 있진 않다. 

 노엘과 리암은 헤어지고 나서 바로 본인들만의 음악 활동을 개시했다. 힘이 잔뜩 들어간 쪽은 리암이었다. Oasis의 다른 멤버들과 Beady eye를 결성한 리암은 항상 노엘을 의식한 듯 옹골찬 자신감을 나타내곤 했다. 그 배포에는 노엘의 독단에서 벗어나 이제 제대로 음악을 해본다는 뉘앙스도 '적당히' 담겨 있었다. 대놓고 토로한 건 아니었지만 다른 멤버도 노엘의 밴드 내 영향력이 지나치게 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각오는 리암이 훨씬 컸다. 리암이 이렇게 의욕에 찬 움직임을 보이는 동안 노엘도 자기만의 밴드를 꾸렸다.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자신과 함께 높이 날아 오르는 새들이라. 나름 그 함의에 골몰하게 만든다. 노엘은 리암과는 다르게 그저 밴드가 해체되었으니 다른 밴드를 규합하는 것뿐이라며 물 흘러가듯 준비를 해나갔다.

 Oasis를 할 때와 현재의 차이를 물을 때도 별 다를 것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음악을 창작하고 매만지는 시스템은 딱히 변화가 없었다. 늘 중심은 노엘이었다. 다시 말해 노엘이 밴드를 운영하는 방식과 환경은 대동소이하다. 오히려 Oasis 시절보다 잡음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는 애당초 노엘의 주도 하에 조직된 밴드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이에 노엘은 새로 밴드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 그저 늘 하던 대로 한다는 식이었다. Oasis에서 흩어진 노엘과 리암의 새 출발은 이렇듯 분위기가 달랐다. 다부진 각오를 가감 없이 보이는 동생과 늘상 덤덤한 감정을 보이는 형의 대치. 

 결과는 상반되었다. Beady eye는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단 두 장의 음반을 끝으로 밴드는 돌연 해제를 선언했다.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기어는 다르나 속도는 같다'고 천명했으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야심 찼던 The Roller, 범상치 않은 선율의 The Beat Goes On, Songbird version 2에 가까운 For Anyone 등 눈에 띌 만한 트랙은 많았지만 전반적으로 리암의 색깔이 고스란히 밴 작품은 아니었다는 평이 중론이었다. 두 번째 음반 BE도 시장에서 그리 돋보이는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풍성하게 차리긴 했지만 포만감은 덜했다. 연이은 실패는 결국 밴드 해체로 이어졌다. 리암이 힘겹게 음악 생명을 연장하는 동안 노엘은 서서히 기지개를 폈다. 노엘이 발표한 두 장의 정규음반은 극찬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체로 Oasis 시절보다는 멜로디가 다소 약하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노엘이 펼칠 세계가 넓다는 것은 충분히 증명했다. 노엘은 Oasis의 껍질을 깨고 나서도 본인만의 확고한 영역을 구축했다. 

                   

 이쯤에서 Oasis의 재결성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고찰해본다. 팬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별개로 이 사안은 전적으로 노엘과 리암 두 사람에 달려 있다. Oasis 시절 해체와 재결합을 밥 먹듯이 할 때도 팬들의 간곡한 마음이 노엘과 리암을 움직였다고 보긴 어렵다. 둘 중 누가 얼마나 양보를 했는지가 더 중요했다. 리암은 프론트맨으로서, 노엘은 밴드 리더로서 주도권을 차지하려 했고 이 싸움은 밴드가 지속되는 동안 끝나지 않았다. 노엘은 리암의 형편 없는 자기관리를 꼬집으며 반대로 리암은 노엘의 권력지향적인 행태를 지적하며 종지부를 찍었지만 현재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노엘과 리암은 당사자들이 그렇게 원하는대로 온전히 본인들이 주체가 된 노선을 밟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희비는 극명히 엇갈렸다. 서로의 존재가 부재한 음악 활동에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느꼈을까. 재결성에 대한 답은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혹자는 리암의 확연한 부진으로 당연히 재결성의 키를 노엘이 쥐고 있다고 장담하지만 이는 그렇게만 볼 문제는 아니다. 만약 리암이 한계를 체감한다면 그것은 단순 음악적 한계인지 아니면 노엘에 따른 한계인지에 따라 양상은 크게 달라진다. 리암이 실패를 겪었다고 해서 스스로 이겨나갈 가능성을 아예 잃었다고 확신할 순 없다. Beady eye 활동에서도 얼마든지 얻은 게 있을 수 있는 리암이다. 리암이 이 바닥에서 머문 세월을 생각해보라. 노엘 역시 리암에 비해 승승장구하고는 있지만 현재 아니면 향후에라도 창작 작업 중 리암의 존재를 상기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때 바로 변화가 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리암에 대한 필요성에 직면하는 것을 뜻한다. 노엘은 자기 주관이 강한 사람이다. Oasis에서도 한결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리암을 염두에 둔 음악을 만들었다. 이는 큰 성공을 안겨주었고 적어도 음악적 완성도에서만큼은 노엘과 리암의 관계는 끈끈했다. 사실 노엘은 리암이 없이도 충분히 자수성가했을 인물이다. 그러나 리암 없이는 불가능했을 음악들이 분명 있었다. 만약 여기에 노엘이 목말라한다면? 판은 충분히 벌어지고도 남는다. 

 양단에 선 두 인물의 의중이 일치하는 장면을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길 진심으로 고대해본다.        

2013/07/26 04:39

그대가 보고 싶다. 이야기

 그대가 보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그대의 발걸음에 맞춰 걷고 싶다. 

 내 눈에 그대를 담고, 그대의 눈에는 내가 담겨 있으면 좋겠다. 

 그대가 보고 싶다. 

 그대의 미소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 

 절박한 그리움은 애틋함이 되어 그대와 통했으면 좋겠다. 

 오늘은 정말 그대가 보고 싶다. 

 

2013/06/27 22:25

난 지금 사랑의 고백, 그 기로에 놓여 있다.


 잘못에 대한 고백은 

 상대의 용서 여부와 책임의 크기 때문에 쉽게 실행케 못하지만,   

 사랑에 대한 고백은

 상대방의 거절에 의해 사라질 설렘이 두려워 이내 주저하게 한다. 

 그리고 난 지금 사랑의 고백, 그 기로에 놓여 있다. 

2013/06/18 05:24

NBA 파이널 5차전 단평.

 사실 NBA 파이널을 제대로 즐기진 못하고 있다. 제일 큰 문제는 일상 때문에 경기를 생중계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맘만 먹으면 온종일 수신기를 끊고 경기가 끝난지 한참 지난 시간에도 결과를 모른 채 볼 수는 있지만, 반타의적으로 승패를 알기도 하고 생각보다 늦은 토렌트 속도는 그럴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번 파이널 5차전을 생중계로 본 것은 아니다. 이미 승패도 알고 있었다. 다만 이번 경기가 NBA 우승 팀을 가르는데 매우 중요했다는 점과 승리 팀이 내 예상을 빗겨간 점이 자못 궁금증을 증폭케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번 파이널 경기 중 가장 집중도가 높았다. 이에 짧게 나마 글로도 남기고픈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제대로 된 농구글을 써본 지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다소 어색하기도 하지만 나름 심혈(?)을 기울여보겠다. 

 애당초 마이애미 히트와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높이와 스피드의 대결이었다. 샌안토니오에 아직 건재한 팀 던컨의 존재는 마이애미의 약점을 더욱 부각했고,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를 주축으로 한 마이애미의 스몰 라인업 역시 그 위용이 만만치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시리즈가 이렇게 팽팽하게 흘러갈 줄은 몰랐다. 두 팀의 컨퍼런스 파이널을 제대로 보지 못해 견해를 내비치는데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마이애미가 좀 더 우세할 것으로 내다봤다. 

 샌안토니오가 멤피스 그리즐리스를 스윕으로 누르면서 기세등등하긴 했지만, 마이애미가 그들 고유의 스타일로 동부지구에서 거의 최강을 자랑하는 데이비드 웨스트, 로이 히버트가 버티는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격파한 것이 더 시사성이 크다고 봤다. 무엇보다 마이애미는 작년에 우승을 차지하며 현 체제에 대한 검증을 받았고, 또 하나 인디애나의 골밑이 샌안토니오보다 전혀 뒤떨어지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양상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샌안토니오는 던컨의 예견된 활약분만 아니라 개리 닐, 대니 그린 등이 기대 이상의 플레이를 펼치면서 팀에 높은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5차전에서는 시리즈 내내 침묵을 지키던 마누 지노빌리까지 뒤늦게 이름값을 하며 마지막 홈 경기에서 승리를 이끌었다. 반면 마이애미는 4차전 승리의 기세를 전혀 이어가지 못한 채 외곽 대결에서도 밀리는 형세를 나타내 시리즈를 힘겹게 이어가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5차전에 대한 평가를 해보겠다. 


 지노빌리 선발 출장은 성공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5차전에서 예상외의 수를 들고 나오는데 이는 지노빌리의 선발 출장이었다. 사실 지노빌리는 앞선 네 경기에서 제 몫을 해주지 못했다. 포포비치 감독조차 "딱히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부진이 심각했다. 그렇기에 포포비치의 결정은 놀라웠다. 아무리 지노빌리라 할지라도 줄곧 식스맨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를 가뜩이나 컨디션이 최악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선발을 내세운다는 건 그만큼 위험성을 담보한다. 하지만 포포비치의 지노빌리에 대한 믿음도 그에 상응할 만했다. 

 결과적으로 지노빌리는 포포비치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했다. 지노빌리는 첫 공격에서부터 3점슛을 터뜨리며 슬슬 시동을 걸었고, 경기 내내 샌안토니오의 공격을 진두지휘했다. 지노빌리가 선발로 나옴에 따라 상대적으로 토키 파커의 공 소유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지노빌리가 처음부터 경기 운영에 앞장서 공격 흐름은 더욱 안정적이었다. 던컨과의 연계 플레이는 물론이고 슈터들에게 찬스를 만들어주는 센스도 빛을 발했다. 

 상대 수비수와 1대1로 맞선 상황에서도 드라이브 인을 하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실마리를 잘 푼 것이 지노빌리에겐 자신감을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노빌리가 본래의 플레이를 펼치자 마이애미 수비진은 손쉽게 무너졌다. 이렇듯 이번 5차전은 지노빌리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얼마나 큰 지 여실히 드러난 한판이었다. 

 자연스러웠던 던컨의 시작

 지노빌리가 본 모습을 찾으면서 가장 혜택을 본 선수는 던컨이었다. 지노빌리의 공격이 순탄하자 던컨의 공격도 순조로웠다. 빅맨이 제대로 된 공격을 시도하려면 먼저 엔트리 패스가 잘 들어와야 한다. 아무리 자리를 잘 잡고 있어도 공이 투입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샌안토니오의 엔트리 패서들은 완벽한 플레이를 펼쳤다. 더욱이 던컨이 크리스 보쉬와의 자리싸움에서 늘 우세를 나타냈기에 득점은 더욱 쉽게 이뤄졌다. 

 포포비치는 이러한 우위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지노빌리와 함께 보리스 디아우를 외곽에 배치하며 패스 범위를 더욱 넓혔고, 덕분에 던컨은 편하게 공격에 임할 수 있었고, 파급 효과로 외곽까지 쉽게 기회를 제공하면서 이상적인 경기력을 자랑했다. 특히 그린은 꾸준하게 3점슛을 지원, 공격의 매듭을 확실하게 지었다. 

 리듬을 잃지 않았던 파커

 사실 지노빌리가 공격 전면에 나서면서 파커의 비중은 다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파커에게 독이 아닌 호재였다. 지노빌리와 경기 운영을 분담하며 다소 유동적이었던 역할이 오히려 파커의 예봉을 두드러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무래도 1번 본연의 임무에 대한 부담이 덜해지자 파커는 공격에 더욱 매진할 수 있었는데 경기 흐름상 필요할 때마다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대부분 직선적인 돌파에 의한 공격이었을 정도로 자신감이 대단했다. 

 무엇보다 로테이션의 변화로 역할이 부분적으로 달라졌음에도 리듬을 잃지 않고 여전한 공격력을 나타낸 점은 그 역량을 새삼 알게 해준다. 특히나 부상을 당한 이후이기에 더욱 칭찬할 만하다. 

 승부처에 더욱 떨어지는 집중력

 샌안토니오와는 다르게 컨퍼런스 파이널을 7차전까지 치른 마이애미는 파이널이 시작하기 전부터 체력적인 부담이 클 것이라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조금씩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팀의 핵심인 웨이드, 르브론의 플레이가 눈에 띈다. 과부하를 의심할 만큼 경기력이 후반으로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번 5차전에서 샌안토니오가 비교적 쉽게 승리하긴 했지만 마이애미에도 반전을 노릴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마이애미는 4쿼터 후반무렵 무려 세 번 연속으로 샌안토니오의 공격권을 무위로 만들며 반격을 노리는 듯했으나 그 여세가 공격에까지 미치진 않았다. 여기엔 웨이드와 르브론의 잘못이 컸다. 르브론은 레이 알렌의 슛 찬스를 만들어주는 과정에서 스크린 파울을 범하며 의외의 실책을 범했고(더구나 알렌은 이전까지 3점슛 네 개를 던져 모두 넣은 터였다), 웨이드는 수비 성공에 이은 속공 찬스에서 유도한 자유투에서 1구를 실패해 팀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다. 

 이 밖에도 르브론은 그린과 맞선 속공 상황에서 득점은커녕 그린의 블록슛에 막혀 천금 같은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에전 같으면 자유투라도 유도했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만약 다음 경기에서도 지금과 같은 장면이 재현한다면 마이애미는 초장에 결판을 내는 것말고는 전혀 승산이 없다. 보쉬에겐 기대지 말자. 6차전에도 마이애미가 5차전과 같은 라인업으로 나온다면 보쉬는 던컨을 막기에도 벅찰 것이다.  

 노출된 공격 방식, 위기를 조장하다. 

 마이애미의 빅3는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득점원들이다. 그러나 이번 5차전에서는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마이애미의 공격은 눈에 보이듯 뻔했다. 밀러, 알렌, 베티에 등 팀의 외곽 자원들이 3점슛 라인 밖으로 빠져 있으면 르브론, 웨이드가 공격의 물꼬를 여는 식인데 애초에 그 방식이 지나치게 단순했다. 먼저 주로 보쉬가 스크리너로 나섰음에도 픽-앤-팝을 전혀 활용하지 않은 점은 공격의 폭을 더욱 좁게 만들었고, 이로 말미암아 웨이드와 르브론의 무리한 1대1 플레이가 많이 나왔다. 

 르브론과 웨이드의 기량을 고려하면 이런 공격도 충분히 써먹을 만하다. 하지만 5차전에서는 미스매치 상황에서도 상대를 그리 압도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나머지 선수들은 정체된 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정형화된 시스템이 전반적인 공격 침체를 낳았다. 마이애미가 현재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보쉬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까지 보쉬의 공헌도가 그리 변변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나 르브론과 웨이드의 체력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선수로는 보쉬가 유일하다. 

 보쉬가 공격에서 던컨이나 샌안토니오를 괴롭힐 수록 르브론과 웨이드가 좀 더 편히 경기에 임할 수 있다는 건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지금 마이애미에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르브론이 페인트 존 근처에서 포스트업까지 하며 팀을 이끌기에는 어깨가 너무나 무거워 보인다.   

2013/06/03 17:04

되돌릴 수 없는, 이야기

 이틀전, 아주 후회할만한 일을 저질렀다. 그날도 난 어김없이 도서관을 갔지만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도서관을 막 나올 때쯤 내가 내려가고 있는 언덕길 위로 손수레에 짐을 싣고 힘겹게 올라오시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망설였다. '도와드려야 하나' 그렇게 잠시간을 고민한 끝에 나는 결국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분명 그때도 나중에 후회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냥 무시해버렸다. 

 몇 걸음 가다 고개를 돌리는 애꿎은 짓만 했을 뿐이다. 역시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왜 그냥 지나쳤나' 하는 뒤늦은 자책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 휴대폰에는 '좋은 일임이 확실하면 망설이지 말자. 어차피 지나치면 후회할 것을.' 이라 메모가 저장되어 있다. 스스로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 써놓은 것이다. 아주 가끔 보며 마음을 다잡기도 하지만, 이젠 그것이 무색해졌다. 

 사실 요즘 여러가지로 복잡하다. 진로문제에서 비롯된 가정문제가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있다. 도무지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이제는 그것을 찾기 위해 애쓰는 것조차 무의미하게 여겨진다. 모든 것이 답답하고 괴롭다. 당장 매진해야 할 공부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할 지 묘연하기만 하다. 이렇게 시간을 흘러 보내고 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채워지고 있는 지, 또 내일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 지 잊은 지 오래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나는 그 할머니와 마주했다. 먼저 도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단면에는 나도 그리 녹록지 않은 처지인데 웃으며 선의를 베풀 수 있을까 아니 그냥 한 번쯤은 지나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양립했다. 나의 선택은 외면이었다. 정말 이기적은 처사였다. 그 순간 나는 할머니의 수고에 맞서 자기합리화를 하려 애썼다. 결과는 뻔했다. 지금도 난 회한에 몸부림치고 있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때늦은 회개만 되뇌이고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할머니를 거들어 드렸다 한들 내 삶에 큰 행운이 깃들거나 풍요로워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결정적인 수간에 내가 내린 판단은 나의 신조를 무너뜨림과 동시에 어딘가 내재했을 편협함까지 드러나게 했다. 정말 자괴감이 가시질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내 실체였던 것이다. 이를 부정할 수 없기에 더욱 목이 조여온다. 할머니에 대한 죄송함은 여전히 아주 깊이 박혀 있다. 그것도 매우 엄중하게.  

2013/05/24 02:25

위험한 명찰 이야기

 간혹 중, 고등학생이 입는 교복을 보면 명찰이 달린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개 명찰을 패용하고 다니는 학생을 보는 일은 무척 드물다. 아무래도 학교 밖에서는 주위의 시선에 더욱 신경이 쓰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사춘기 때니 오죽하랴. 근데 어제 조금 놀라운 광경을 봤다. 어느 여중생이었는데 명찰이 교복 상의에 아예 박음질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즉 그 학생은 본의 아니게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도 해당 학교에서 교내에서도 명찰을 달지 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내린 묘책일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프라이버시 침해 아닌가?' . 명찰의 용도란 무엇일까. 간단하다. 자신을 알리기 위함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철저히 타인의 관점에 맞춰져 있다. 학생들의 의사가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명찰을 다는 것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선생님들은 하루에도 수십명의 학생을 가르친다. 모든 학생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불가능하다. 명찰이 있다면 학생들을 굳이 '야', '너' 이런 식으로 지칭하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수업하는데 큰 편의가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조차 명찰을 떼지도 못하게 아예 교복에 부착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억압이다. 이름은 엄연히 개인 정보다. 그런 중요한 신상을 아무 곳에서나 노출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좋지 않게 보인다. 생면부지인 사람이 한 학생의 교복만 보고도 어느 학교에 다니는 몇 학년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가뜩이나 사생활에 대한 경계가 심한 세상에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오히려 학교가 학생들을 보호해주지는 못할 망정 안전지대 밖으로 내몰고 있다. 

 학교 지도층의 교사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 뒤에는 학생들에 대한 무관심이 배여있다. 

2013/05/16 02:44

오랜만이다.

 내 블로그인데도 참 오랜만이다. 가끔 방문할 때마다 풍성한 내용을 채울 것이라 다짐했건만 쉽지 않다. 앞으로 그런 공약(?) 같은 건 하지 말아야겠다. 사실 몇 개월만인지라 비밀번호도 잊어 로그인하기까지도 애를 많이 먹었다. 결국 주민번호 대용인 아이핀을 거쳐서야 겨우 회원 인증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블로그의 면면은 여전히 그대로다. 마지막 게시물의 게시 날짜가 무려 작년이다. 해가 바뀌어 그런지 더 멀어 보인다. 올해에는 과연 얼마나 글을 쓸 수 있을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조금씩 노력해보자. 언젠가 시간이 흘러 다시 블로그를 찾을 땐 의욕찬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 조금씩 노력해보자. 

2012/12/30 05:08

새벽 5시. 이야기

 제대로 된 글을 써본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나.

 이제 슬슬 열을 올릴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떠오르는 생각이나 인상 깊은 사건, 때때로 젖어드는 감상을 놓치지 말자.

 누군지 모를 그대가 작문의 주제가 된다면 더 바랄게 없으리.

 허나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2012/01/05 03:41

Beady Eye - The Roller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두 Roller가 되길.

2011/12/31 17:42

무제. 이야기

 어릴 때는 알려줘도 모르지요. 그래서 커서 더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쉬워 하는 순간에는 이미 멀리 와버렸네요. 

 여전히 계속 뒤돌아보고 있는 지금.

2011/12/23 03:49

당신은 왜 사나요?

 듣고 싶습니다.

 자문하면 답을 낼 수 없거든요.

 


2011/12/15 02:54

야밤에 시 한 수 이야기

 시제 - 아무도 몰라주오

 저기 저 봉우리 진 꽃에 내 마음 한가득.

 하지만

 어디에도 햇님은 보이질 않네.


2011/12/14 00:41

Beady Eye -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리암 갤러거는 멋지게 독립에 성공했다. 형의 도움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오아시스가 떠오르면 어떤가. 리암이 이렇게 멋지게 정체성을 나타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웬만하면 노엘 갤러거 얘기도 하고 싶지만, 이번만큼은 연결고리를 끊어보자. 이제 리암도 어엿한 주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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